투자 및 기업분석

투자에 대한 아주 작은 고민

VC_engineer 2024. 9. 13. 19:42

 연구직에서 VC로 업을 옮긴 지 1년이 조금 넘은 2024년도 벌써 9월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신없이 상반기 투자를 마무리하고, 손에 들고 있는 딜 중 4분기는 어떤 투자를 할지 정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데, 저녁에 카페에 혼자 앉아서 최근에 했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정보를 담기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생각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보려 한다. 평소 글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일기 같은 글이니 두서없이 보여도 욕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ㅎㅎ

혼자 카페에서 책 읽거나 블로그 쓰는 취미를 가진 1人

 최근 VC 선배님들을 만나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작년부터 VC 업계로 들어왔으면.... 재미없는 시기에 들어왔네 ^^;;" VC 입장에서 재미없는 시기라는 것은 투자 수익을 내기 힘든 시기로 이해했는데,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씩 쌓일수록 최근이 투자가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생각한 최근 투자가 힘든 점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섹터와 관련된 내용이다. 과거부터 IT기기, 플랫폼, 바이오, 블록체인과 같이 VC 투자에도 급성장하는 트렌드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트렌드의 초기에 인사이트 있는 투자를 한 선배 VC들은 막대한 투자 수익을 얻고, 부와 명성을 얻었다. 2000년대 초반 IT 시대를 넘어, 大 바이오의 시대가 있었고, 가장 최근까지의 대세는 2차 전지와 반도체였고, 지금은 2차 전지/반도체 트렌드의 끝자락에 서 있는 느낌이다.

 주요 산업들이 성숙기에 들어서다보니 최근 업체들의 아이템을 보면, 새로운 섹터의 신기술보다는 일부 제품의 '국산화' 또는 기존 시스템의 '개량' 아이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이 또한 산업 성장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지만, Saturate 된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스타트업이 조 단위의 회사로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타트업의 peer group으로 볼 수 있는 국내 상장 시장을 보면, 대부분의 종목들의 주가 흐름도 좋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코스닥 시장을 보면, 우리나라가 기술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해외 업체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업체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하나의 문제점인 것 같다. (위로는 미국, 아래에서는 중국) 최근 코스닥 업체들은 시가총액의 한계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글로벌에서 통하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들은 국내 주식 시장을 벗어나는 Value를 받기도 하는데, 이런 업체들을 찾아내야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2차 전지/반도체 다음의 섹터가 무엇이 있을지 열심히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는 중이다.

 두 번째는 투자 Value와 관련된 문제다. VC 수익의 근간은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리스크 있는 주식 투자를 하여, 비상장시장에서 "싸게" 사서, 상장시장에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은 이 구조가 동작하지 않는 것 같다. 과거에 비해 VC는 많아졌고, 주요 정책자금은 모태펀드/성장금융을 통해 꾸준하게 시장으로 공급되고 있는 중이다. 8년짜리 블라인드 펀드를 만들면 보통 3~4년 내에는 투자를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VC들은 투자금 소진 이슈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시장 형성의 초입부에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투자금이 다양한 기업에 흘러들어간다. 하지만, 최근 같은 시장이 Saturate 된 상황에서는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VC들의 투자 관점은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내 눈에 좋아 보이면, 다른 VC 눈에도 좋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생기는 문제는 회사가 조금만 좋아 보여도 소진 이슈가 있는 VC들이 몰리기 때문에 투자금이 다양한 업체가 아니라 특정 업체들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즉, 조금만 좋아 보이는 업체들은 Value가 너무 높아지기 때문에, 비상장시장에서의 Value는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이런 업체들이 가능성을 인정받고 상장되는 코스닥 시장은 어떨까? 이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식을 할 것이고, 최근 주식에서 슬픈 경험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장은 쉬지 않고 올라가는데 반해, 코스닥 시장은 미장이 오를 때는 안 오르고, 내려갈 때는 충성도 높은 동생처럼 먼저 저~ 아래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다. 몇 년 째 박스권에서 지수가 움직이지 않는 시장인데, 과거와 비교하여 코스닥에 상장된 업체는 많이 늘었다. 하지만, 기술특례상장으로 올라간 업체들의 재무실적은 상장 시 제시한 것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에 실망하는 투자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총금액은 크게 늘지 않는데, 업체 수는 늘어나고, 업체 하나에 들어가는 수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전체적으로 침체된 시장이 되어가는 것 같다. 즉, 상장 시장의 Value는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최근에는 Pre-IPO보다 peer group으로 묶이는 상장 주식들의 Value가 낮은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리하면, 최근의 VC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게 아니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유동성 공급자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장에서도 좋은 투자를 많이 해서 꾸준한 수익률을 거두는 훌륭한 VC 선배님들도 많으시고, 같이 딜을 하거나 커피챗도 하면서 옆에서 많이 배우고 있다. 사실 개인투자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장에서는 투자를 잠시 쉬는 것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VC는 펀드 소진기간이 있고, 특히 업계에 진입한 주니어 입장에서는 투자를 쉰다는 것은 결과만 놓고 보면 일을 안 했다는 것으로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투자를 아예 쉴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투자를 적게 하지 않았지만, VC 친구과 얘기하면 좋은 딜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는 항상 나온다)

 정리하면, 당장 트렌디한 섹터에서 큰 수익을 거둬서 성과 보수를 받을 수 있을 확률은 높지 않아보인다. VC로써 해결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는 한국 주식이 아니라, 해외 투자를 하는 방법이다. (최근 해외 딜을 했는데, 투자 절차가 국내보다 훨씬 복잡해서 고생했다) 즉, 국내 시장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닌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업체를 발굴하고, 글로벌한 Valuation을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거둘 가능성이 올라가는 것 같다. 이는 법인이 해외가 아니어도, 글로벌 SI에서 투자받거나 해외에서 인정받는 기술,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면 비슷한 맥락일 것 같다. 

 두 번째는 초기 단계에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섹터를 발굴하는 방법이다. 남들 눈에 좋아보여서 Value가 높은 것이 문제면,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업체나 섹터를 찾으면, 낮은 Value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게 VC 투자의 근본이지만, 초기 투자일수록 리스크도 크고, 펀드 레이징도 쉽지 않기 때문에, 최근 VC들은 빠른 Exit이 가능한 투자를 선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 같이 비상장시장과 상장시장의 Value가 역전된 상황에서는 초기 투자를 할 적기이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이번에 우리는 초기업체에 투자하는 펀드가 생겼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완전 뒤쪽 단계 투자를 하던 PE들도 최근 업체 IR을 가면 마주치는 하우스들이 있는데, PE들도 초기까지는 아니어도 앞단으로 많이 내려온 것 같다. 

 앞으로 각광받을 섹터를 찾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최근에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인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반도체 이후의 투자 트렌드는 찾기 힘들다. (이와 관련하여 고견이 있으신 분은 커피챗 한 번 부탁드립니다.) 나는 기술 기반의 투자를 중점적으로 하기 때문에 선행 기술들에 대한 리포트를 읽고 있다. MIT Technology 같은 기술 잡지나 ITFIND 주간기술동향 등 기술 보고서나 전자신문 등으로 꾸준하게 스터디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대부분이 너무 먼 미래의 선행기술이거나 너무 최근 기술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양자는 앞으로 올 분야는 맞지만, 아직 구현까지 너무 먼 미래 같고, 칩렛이나 CXL 같은 최신 반도체 기술들은 매출의 가시성과 비교했을 때 아주 높은 Value에 선반영 되어 있는 것 같다.  

Conclusion

 오늘의 생각 정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주 개인적이고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VC 업계의 현재 상황에서 기존 트렌디한 섹터에서의 Series-B, Pre-IPO 등 뒷단 투자는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제한적일 것 같다. 따라서, 최신 기술 트렌드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앞단 투자에 집중해야할 것으로 보이며, 해외딜도 적극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이 방법이 내가 처음에 VC에 들어오고 싶었던 이유인 '세상을 바꿀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의 투자'에 가까워지면서 동시에 투자 수익률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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