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이코노미스트 2025 세계대전망
2024년도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긴 연말 휴가를 보내고 있다. 혼자 카페에 앉아서 한 해를 돌아보면, 2024년은 정신없고, 많은 이벤트들이 있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작년과 비교하였을 때, 우리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산업인 반도체와 2차 전지 전방 시장이 빠르게 냉각되면서 국내 자본 시장도 빠르게 얼어붙었다. 미국 대선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있었다. 불운하게도 대부분의 이슈가 안 그래도 취약한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이는 투자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부분의 VC들이 감액 이슈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LP의 출자든 GP의 투자든 Potential 보다는 안정성 및 상환 가능성에 훨씬 높은 비중을 두게 되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돌아보면서, 작년 말 비슷한 시기에 했던 2024년 전망이 실제로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비교해 보고, 맞으면 맞는 대로, 틀렸으면 틀린 대로 어떤 변수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또한, 2025년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어떤 산업이 주목받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평소에도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휴가 기간에는 시간이 많이 남는 관계로 다양한 책을 리뷰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 책으로 이코노미스트에서 매년 출판하고 있는 시리즈인 '이코노미스트 2025 세계대전망'을 선택했다.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와 미국의 관세 및 IRA 등과 관련된 경제 정책이 각 분야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2025년을 전망하고 있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공약 중 전기차 보조금 행정 명령 폐지 등 의회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의 행정 명령만으로 실현 가능한 내용들은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IRA 폐지 및 보편 관세는 의회 승인이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약이 있을 것이고, IRA의 혜택을 받는 많은 지역이 공화당 소속이기 때문에, IRA 폐지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박종훈 기자가 쓴 트럼프 2.0 시대라는 책이 트럼프와 현실적인 미국 정세를 기반으로 경제 상황을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미국에서 모든 국가에 높은 보편 관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의 중국산 저가 제품 밀어내기로 많은 나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따라서, 중국산 제품은 유럽 및 미국 등에 수출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높은 관세를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중국은 '중국산 타이틀을 떼기 위한' 해외 공장 설립을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BYD는 튀르키예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으며, GWM은 태국에 자동차 공장을 열었고, 트럭 제조업체 포톤은 멕시코 전기차 공장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최근 읽은 다른 분석 자료에서는 BYD가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거듭 노력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C를 K로 바꾼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은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한 해외로 생산기지 이전 등 방법을 마련하고 있지만, 미국 보호주의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과 아시아의 안보에 미칠 영향도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상황은 아시아 패권 싸움과 미국의 자국 보호의 흐름 속에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유럽에 더 높은 방위비 지출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으며, 실익이 크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빠르게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협상안 중 하나는 현재 전선 동결과 우크라이나의 중립 유지 요구로 보인다. 유럽이 미래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들이 결속력 있게 뭉쳐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하지만 대내외 환경이 어렵다. 미국은 예측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유럽 주요 국가들의 대내외 이슈가 2025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U를 이끄는 주요 국가들 (e.g., 프랑스, 독일)에서는 총리/정부에 대한 불신임과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폭스바겐 등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면서 경제 불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국방 생산능력 확충을 이루지 못한 서방의 지원이 줄어들고, 미국의 휴전 압박이 이어진다면, 우크라이나도 2025년에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모디 정부는 2025년 초 11조 루피 (약 1,300억 달러)를 공공 자본 지출에 할당할 계획이고, 인도 대기업들도 투자 금액을 대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간 투자는 많은 비중이 그린수소,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신규 산업에 투입될 예정이고, 공공 자본은 인프라 건설에 투입되어 인프라 구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주도형 경제호황이 효과가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책에서는 중국-대만에 맞춰져 있던 안보 이슈가 2025년은 남중국해로 초점이 옮겨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각 국가들은 영유권 주장에 단호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미국은 동맹의 안보 상황보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산업에 대한 분석도 다루는데, ESS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서술한다. 생산량에 변동성이 있는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이를 저장하기 위한 ESS도 성장하고, 나트륨 배터리 등 에너지 저장장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들도 등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ESS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면, ESS는 전기차 같은 제한적인 공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데이터센터와 ESS가 비싼 도심 한복판에 있지 않다는 가정하에 에너지 밀도라는 수치보다는 안정성과 비용의 이슈가 더 크리티컬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바나듐 흐름전지 등 다양한 기술들이 연구되고 있는데, 나트륨 배터리와 저렴한 LFP 배터리를 이용한 ESS 개발도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기술이 커다란 ESS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 전망하는 또 하나의 긍정적인 산업은 디펜스 테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국방력 확충을 위한 디펜스 테크가 최근 유럽 벤처캐피털들이 많이 투자하는 분야고, 앞으로 성장할 분야로 전망하고 있다. 핵융합과 관련된 에너지원 연구도 이어지고 있지만,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의 계획이 많이 늦춰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책에서 주목하는 신기술은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다. 2년마다 컴퓨터 처리 성능이 2배로 증가한다는 반도체 무어의 법칙과 반대로, 9년마다 신약 개발비용이 2배로 증가한다는 이룸의 법칙이 AI 시대에 무너질 수 있다고 언급한다. AI가 아직 임상시험 일정 자체를 단축하지는 못했지만, AI로 적합한 단백질 및 분자구조를 찾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신약 개발 과정에서 후보군을 찾는 실패율을 낮추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신약 개발 비용이 줄어들고,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서 mRNA 등을 이용한 암 백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2024년 한 해 동안 IPO가 적었던 점을 언급하며, 그 원인으로는 금리 상승 및 혼란스러운 인플레이션 전망을 꼽는다.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무위험수익률에 변동이 커지고, 적정 가격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과적으로 IPO가 어려워졌다. (우리나라는 증시 전체가 안 좋았던 점도 상장 철회를 가속화시켰다) 또한, 유럽과 중동의 전쟁, 여러 지정학적 요인들에 맞물려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가 IPO를 하면서 장기적인 성과에 대해 약속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음을 언급한다. 2025년은 IPO 회복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런 변동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당분간 IPO 가뭄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onclusion
이 책에서는 주요 국가별 정치, 경제, 산업 등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고 있다.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주제만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내용인데, 하나의 책에 압축하여 담다 보니 깊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는 못하고, 이 리뷰에서도 책에 언급된 내용 중 몇 가지 이슈만 정리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양한 국가들의 이해관계과 경제 상황을 담다 보니 주요 글로벌 이슈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미래 기술 및 산업에 대한 내용이 적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지만, 테크와 관련된 내용들은 다른 책을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2024년 많은 국가들이 내홍을 겪었고, 2025년에도 국제 정세가 혼란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정세가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기술 발전 및 새로운 트렌드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최근 국제 흐름 속에서는 정치가 경제 이슈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올해는 정치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정치 외에도 중국의 청정 기술 굴기, 인플레이션의 미래, 2025년에 발생할 확률이 낮지만 발생하면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이슈 등도 흥미로웠던 주제였다. 책을 먼저 속독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더 큰 그림을 머리에 넣고 각 이슈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의 생각정리도 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